오래된미래

아이작 뉴턴을 통해 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교육(1)

믿생 2020. 3. 10. 14:50

 

 

 

지난 글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단지 IT전문가에게만 국한된 흐름이 아님을, 평등을 향한 큰 흐름 속에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점점 평등해지는 그 기회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 어떻게 나와 다음 세대가 준비되어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최근 많은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4차산업혁명에 준비된 인재로 자라나길 원하지요.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은 코딩 교육과 각종 프로그래밍 학원이 큰 유행입니다. (관련기사: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6121291751)

 

단기속성 100만원…유치원생까지 '코딩' 열풍

단기속성 100만원…유치원생까지 '코딩' 열풍,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IT영재 조기 발굴" vs "기술만 익힌 코딩기계 양산" 강남·목동서 전국으로 확산…학부모 설명회 조기 마감도 非자격 강사 많아 질 저하 우려…'컴' 졸업장만 있어도 강의 "공교육 기반 없는데 의무화…사교육 시장만 배불려준 꼴"

www.hankyung.com

 

그러나 맹점이 존재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고 싶어하는 롤 모델. 즉, 현재 4차 산업혁명이라는 흐름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정작 4차산업혁명이 존재하기 전에 교육받았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유행하는 코딩 교육이나 프로그래밍 학원 같은 유행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들이 아니지요. 코딩이나 프로그래밍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표면을 흉내내는 것으로는 본질에 이를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주창한 것은 클라우스 슈밥이지만, 그의 공로는 이미 존재하는 특징적인 흐름을 개념화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어떻게 해야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키워낼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1. 4차 산업혁명의 현재 주인공들
2. 아이작 뉴턴
3. 17세기 말~18세기 초의 상황

4. 결론

 


 

1. 4차 산업혁명의 주인공들

 

4차 산업혁명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이신가요? 저는 일론 머스크와 알파고의 아버지인 데미스 허사비스가 떠올랐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워낙 큰 흐름이다 보니, 몇몇 사람으로 이 흐름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페이팔과 테슬라, 스페이스X와 더 보링 컴퍼니 등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아이디어를 실재화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와, 2016년 이세돌을 꺾은 범용 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인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의 CEO인 데미스 허사비스가 4차 산업혁명의 기수라는 데 있어서는 모두 동의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도 만약 아이가 있다면 이들의 성과가 아니라더라도 이들의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좌), 데미스 허사비스(우)

 

워낙 유명한 사람들이다 보니, 굳이 이들의 업적을 언급하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의 유년 시절(Early Life)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위키피디아의 정보를 읽어보며 한 가지 특징적인 공통점을 발견해 볼 수 있었습니다. 아래 발췌된 내용을 보며 함께 살펴 보시죠. 

먼저, 일론 머스크에 대한 내용입니다. 

"머스크는 어릴적부터 엄청난 애독가였다. 그는 책을 통해 스스로 배우는 것에 익숙했고, 12살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스스로 익혀 블래스터 (컴퓨터 웜)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이 게임은 머스크가 공상 과학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가상공간 게임으로, PC와 사무 기술이라는 잡지 회사로부터 500달러를 받고 소스코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머스크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고,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주했다. 1989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킹스턴에 있는 퀸스 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였고, 우수한 성적을 받은 덕분에 1992년에 장학금을 받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로 편입했다. 머스크는 그 곳에서 경제학 뿐만 아니라 물리학도 추가로 전공하였다. 24살이 되는 해인 1995년 머스크는 재료과학과 물리학 분야에서 스탠퍼드 대학 박사과정을 등록했다가 인터넷의 물결에 휩쓸려 스탠퍼드 대학교를 자퇴하고 실리콘 밸리로 이주하게 된다." 

<출처: ko.wikipedia.org/wiki/일론_머스크>

다음은 데미스 허사비스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는 구글 딥마인드의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이다. 그는 13살의 나이에 체스마스터가 됐고, 17살에 게임 개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부터 프로그래밍을 배운 그는, 블랙 & 화이트라는 게임의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데 참여했다. 엘리시르 스튜디오라는 비디오 게임 개발사를 만들어, '리퍼블릭: 혁명(Republic: The Revolution)'과 '이블 지니어스(Evil Genius)'라는 게임도 제작했다. 2005년 게임 개발 업계에서 은퇴한 뒤, 인공지능 개발에 뛰어들었고, 2010년 '딥 마인드'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딥 마인드'는 2014년 구글에 인수되었고, 허사비스는 인공지능 부문 부사장이 된다. 딥마인드는 알파고라는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을 만들고, 판후이, 이세돌 등 세계적인 바둑 프로기사들과 대결시키면서 유명해졌다."

<출처: ko.wikipedia.org/wiki/데미스_허사비스>

 

어떠신가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성공가도와 두 사람의 삶은 조금 결이 다른 것이 혹시 느껴지시는지요? 저도 어렸을 때 부터 유명하고 안정적이고 탁월한 조직- 좋은 지역,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에 소속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부모님께 영향을 받으며 살아 왔는데요, 그러다 보니 좋은 곳에 가기 위해 좋은 성적을 내려고 했지만 스스로의 동기가 충분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렇게 해야겠다는 당위적인 생각 속에, 열심히 해야겠다는 당위적인 노력을 했지만 잘 안되는 스스로를 보며 괴로워했던 것이죠. 더 잘 하는 친구와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구요. 

반면 두 사람은 모두 어렸을 때 부터 어디 좋은 곳에 소속되기 위해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직접 무언가에 도전하고 만들어 왔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책을 통해 스스로 공부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스스로 익혀 컴퓨터 게임을 직접 만들었으며, 허사비스는 체스 영재였는데 17세부터 게임 개발 중에서도 게임 속 인공지능을 개발하는데 참여하게 됩니다.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기는 했지만, 아마도 그것을 배워나가는 과정에서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겠지요.

조금 더 두 인물에 대해 흥미가 생기시는 분들은 아래 인터뷰 영상을 보시면 매우 흥미로운 생각을 경험하실 수 있을 듯 합니다. 
*(https://youtu.be/KMAbBcCkYV8)

*(https://youtu.be/lcZ1T9v22oc?t=204)

 

이 두 사람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한다거나, 자신의 인생이 어떤 모습을 띄고 싶었다던가,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저러하게 살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던지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시선은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데 있지 않고, 오직 자신이 해결하기 원하는 문제에 초점이 가 있지요.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어려움에 당황하여 포기하기 보다는, 직면하고 넘어서는 그 모습이 참 멋지다고 부러웠습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크고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즐거움 속에 살고 있는 모습이랄까요. 



2.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

 

 

 

Nature and nature's laws lay hid in night; God said "Let Newton be" and all was light.
대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어둠에 감싸여 있었도다. 주께서 "뉴턴이 있으라!" 하시매 모든 것이 밝아졌도다.

- 알렉산더 포프, 뉴턴의 묘비명

 

현재의 인물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도 있고, 또 아직 어린시절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아 과거에서 이러한 인물들을 찾아볼까 합니다. 300년 전으로 돌아가 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며, 그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과 고전 역학의 바탕을 이룬 3가지의 물리법칙(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저술한 사람, 바로 아이작 뉴턴입니다.

뉴턴은 마이클 하트Michael H.Hart 가 저술한"The 100" (역사상 가장 영향을 끼진 100명의 인물)리스트에서 두 번째를 차지했는데요, 1위는 무함마드, 3위는 예수, 4위는 부처, 5위는 공자이니 그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조금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시대의 '수저론'을 적용하자면, 뉴턴은 상당히 불우한 흙수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동아사이언스에서 정리한 뉴턴의 어린시절을 잠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문은 출처에 걸린 링크 참고)


"만유인력 법칙의 발견자로 유명한 아이작 뉴턴(Sir Issac Newton, 1642~1727)은 갈릴레이가 죽던 해인 1642년 12월 25일, 영국 링컨셔의 울스롭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조산아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평범한 자작농이었고,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 뉴턴이 3살이 되었을 무렵 어머니가 그 지방의 목사와 재혼을 했기 때문에 그는 외조부모 밑에서 자라야 했다. 몸집이 작고 허약한 아이였던 뉴턴은 어머니를 데리고 가버린 의붓아버지를 몹시 미워하며 자랐다.
  
훗날 그는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적으면서 '새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그들의 집을 불태우겠다고 위협'한적이 있음을 고백했다. 뉴턴이 10살 되던 해 의붓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자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이복형제 셋을 데리고 뉴턴 곁으로 돌아왔다.

뉴턴은 수학자의 두뇌뿐만 아니라 목수의 손 또한 가지고 있었다. 여가시간이면 쥐들의 힘으로 움직이는 풍차모형, 물시계, 해시계, 촛불을 단 연등을 만들면서 시골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농부가 되기를 원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농장으로 불러 일을 시킬 정도로 뉴턴의 어머니는 교육에 무관심했다. 결국 뉴턴의 천재성을 발견한 그 지방의 어느 학교 교장의 도움으로 뉴턴은 1661년 캠브리지 대학에 입학했다. (후략)

<출처: 동아사이언스, "고전역학의 기본을 정립한 천재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


 

왼쪽부터 오른쪽 순으로, 해시계, 물시계, 쥐의 힘으로 움직이는 풍차(모형)

 

이렇듯 뉴턴은 호기심이 가는 것은 언제나 직접 만들어보며 그 원리를 익혔던 것 같습니다. 사실 뉴턴의 어린시절은 지금처럼 형형색색의 자극으로 둘러싸인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매우 단조로운 일상이었지요. 뉴턴은 매일 강 건너편에 있던 풍차를 보며 실제로 풍차를 흉내내어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태양과 물과 바람 같은 자연을 이용한 물건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과를 보며 만유인력에 대해 궁금해하게 된 것 또한 자연을 면밀하게 관찰하곤 했던 이 시절의 심심함이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또한 뉴턴은 직접 물건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물체가 작동하는 원리를 익히게 되었는데요, 이는 향후 고전역학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큰 기여를 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뉴턴이 성장하고 점차 상급학교로 진학함에 따라 그가 마주하는 문제는 조금씩 복잡하고 깊어졌는데요,  그의 포기하지 않는 실험정신은 정말 과감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고민할 때, 뉴턴은 이미 탐구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1648년 캠브릿지를 방문한 핼리('핼리혜성'의 그 핼리 맞습니다.)가 뉴턴과 나눈 대화가 그것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핼리: "지구의 태양 공전 말입니다. 인력의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면 어떤 궤도가 나올 것 같습니까?"
뉴턴: "그거, 20년 전에 계산해 봤는데 타원이더군요."
핼리: '!!!!"


핼리는 뉴턴에게 당장 증거를 보여달라고 부탁했지만,뉴턴이 갑자기 20년 전의 자료를 찾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서 며칠 후에 한 논문의 초본이 우편으로 핼리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내용에 충격과 감격을 받은 핼리는 당장 출판을 하자며 뉴턴을 설득했고, 그렇게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이 바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프린키피아 입니다. 

그의 실험정신이 얼마나 과감하고 대단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 또 하나 있는데요, 인체의 눈(안구)의 작동원리를 익히기 위해 자신의 눈(안구)과 뼈 사이에 바늘을 깊숙히 찔러 넣기도 했습니다.

<Photo: The Isaac Newton Manuscripts at the National Library>

 

"나는 바늘을 집어 들고 나의 안구와 뼈 사이(*눈물샘 쪽입니다)로 가능한 한, 깊이 찔러 넣고
(눈의 bcdef 부위가 휘어지도록) 안구를 살짝 눌러보았다. 그랬더니 몇 개의 작은 원들이 흑백이나 컬러 영상으로 r, s, t, c 부위에 나타났다. 이 상태에서 안구를 계속 문지르면 희미한 원들이 계속 나타나지만 눈에서 손을 떼면 안구와 바늘이 접촉한 상태인데도 작은 원들이 점점 희미해지다가 사라졌다."

 

정말 대단하죠?(조금 무섭기도 합니다). 단순히 흥미로운 에피소드 정도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뇌를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장비가 없던 시절, 절대 호기심과 타협하거나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던 뉴턴은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 막막함 가운데 시도를 하고야 마는 뉴턴과, 저처럼 포기해 버리는 평범한 사람이 있는 것일까요. 결국 뉴턴은 친구였던 핼리의 권유로 1687년에 『프린키피아Principia』(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 를 출판하였고, 이를 통해 근대역학근대천문학이 확립되었습니다.

뉴턴은 지구와 사과 사이에, 지구와 달 사이에, 태양과 목성 사이에,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인력이 작용한다는 점을 밝히고, 이것과 3가지 역학법칙(관성의 법칙, 힘과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결합하여 행성의 타원운동은 물론 지상계와 천상계의 여러 운동들을 수학적으로 설명했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정립하여 이른바 현대물리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뉴턴의 역학체계는 고전역학이 아닌, 물체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최신의 역학이었지요.

 

 

3. 17세기 말~18세기 초의 상황

 

뉴턴의 시대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였습니다.

 

 

뉴턴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자연과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연구는 실제하는 삶에 큰 영향을 끼쳤지요. 

뉴턴의 살았던 시대는 봉건제가 붕괴하고 상업자본과 제조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때 였습니다.  거대한 변혁의 시기였죠. 상업이 발달하면서 안정적으로 많은 양의 상품을 운반해야 할 필요가 생겨났고, 해상 수송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업의 발달로 교환수단인 금과 은의 수요가 늘어났고, 덕분에 채광업은 거대한 산업이 됩니다. 군사기술의 발전도 있었지요. 중국에서 발명된 화약이 유럽으로 알려지게 된 이후 화기가 급속하게 개발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혁은 다음과 같은 실질적인 과제들을 숙제로 남겼습니다.

- 해상수송: 배의 적재능력, 항해능력, 해상의 배의 위치결정방법(당시에는 위치 확인이 불가하여 연안을 따라 운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운하와 수운의 건설에 대한 기술적 문제

- 채광업: 광석인양, 갱도의 환기, 배수 및 펌프, 송풍, 광석선별

- 군사기술: 화기의 최소중량과 안정성, 탄환궤도에 관한 기술적 문제

새로운 사회가 직면한 위와 같은 문제들은 역학 연구에 과제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중세의 대학들은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으며(사실 해결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발전해가는 여러 자연과학에 반대하며 적극적으로 이와 대립하였습니다. 과학계에서는 여러 물리학적 문제들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종합적인 개관을 제공하는 견고한 과학적 기초를 쌓을 필요가 생겨났으며, 이를 충족시켰던 것이 뉴턴의 『프린키피아』 였던 것이지요. 산업혁명이 영국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논의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1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마련한 사람이 바로 아이작 뉴턴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아놀드 토인비가 『Lectures on the Industrial Revolution of the Eighteenth Century in England 』에서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18세기 중반에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산업기술이 발전하는 현상을 가리켜 표현한 것입니다. 봉건주의와 중상중의 시대에서 시장경제와 산업화 시대로 넘어가는 국가가 거치게 되는 역사적 단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4. 결론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는 2020년. 저는 일론머스크와 허사비스와 같은 선두주자의 모습을 뉴스를 통해 바라보며 마냥 부러워하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참여하기에는 어려울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더욱 어려워질 것만 같은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괴로워하던 차에, 나는 이번 생애를 포기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자라나는 다음 세대는 어떻게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는 다음 세대를 그러한 사람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나부터 변해야 하는 것이었지요. 그것이 첫번째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쓴 글이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까?

 

  그러면 또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어디서부터 변해야 하는 것일까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제가 갑자기 IT 전문가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의 주인공들이며, 그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수불가결한 것인지 조금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교육의 본질적인 것이라면, 시대가 17세기인지 18세기인지 21세기인지와 상관없이 그 모습은 다를 지라도 본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300년 전의 뉴턴을 보게 되었고, 정리하면서 조금씩 저의 생각이 정리되어 가고 있는 듯 합니다.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교육의 흐름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으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현대 교육의 흐름과, 제가 생각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에 대해 적어 볼 예정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음 글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